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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균 (金玉均) *사망

직업 : 국내 역사인물
출생일 : 1851년
 
 
 
 
  다른 표기   金玉均  
  사망일   1894년  
  별명   자 백온(伯溫)  
  경력사항
 
1872년 알성문과에 장원으로 급제
1874년 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로 임명
1884년 12월 갑신정변 단행
 

  관련사항
 
본관 안동(安東). 자 백온(伯溫). 호 고균(古筠) ·고우(古愚). 시호 충달(忠達). 갑신정변(甲申政變)을 주도하였다. 6세 때 김병기(金炳基)의 양자로 들어가 1872년(고종 9) 알성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교리(校理) ·정언(正言) 등을 역임하면서 관료로서 출세의 길이 열렸다. 그러나 박규수(朴珪壽) ·유대치(劉大致) ·오경석(吳慶錫) 등의 영향으로 개화사상을 가지게 되었으며, 특히 1881년(고종 18)에 일본을 시찰하고, 다음해 다시 수신사(修信使) 박영효(朴泳孝) 일행의 고문으로 일본을 다녀온 후에는 일본의 힘을 빌려 국가제도의 개혁을 꾀할 결심을 굳혔다.

조선시대의 정치가이자 개화운동가로 공주 출신이다. 일찍이 개화 사상에 눈을 떠개화당을 조직하는 한편, 1884년 박영효·서광범·홍영식 등과 더불어 새 내각을 조직, 갑신정변을 일으켜 실권을 잡았으나. 청나라의 개입으로 3일 만에 실패하여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그 뒤, 청나라로 건너가 뜻을 펴려 하였으나, 수구파가 보낸
자객 홍종우에게 암살당하였다. 그 뒤 갑오개혁으로 개화파 정부가 수립되자 죄가 사면, 복권되었으며, 1910년 규장각 대제학에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기화근사> <치도약론> <갑신일록> 등이 있다.
김옥균은 우리 나라에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는 쇄국정책을 버리고 문호를 개방하여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이다. 그리고 우리 나라 국기의 필요성도 함께 인식하여 박영효와 함께 태극사괘로 만든 태극기를 고안해 냈다.
이 태극기를 우리 나라 정부에서는 서기 1883년 1월에 우리 나라 국기로 사용할 것을 정식으로 공포하였다. 김옥균이 일으킨 갑신정변은 청나라의 지나친 내정 간섭과 이들을 무턱대고 지지하던 민씨일파의 사대당을 꺾어 버리고 우리 나라가 자주 독립 국가라는 것을 온 세계가 알리려는 것이 본래의 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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