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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일 (金弘壹) *사망

직업 : 군인 , 국회의원 , 독립운동가
출생일 : 1898년 09월 23일  쪽집게 궁합
학력 : 오산학교
출생지 : 평안북도, 용천
 
 
 
 
  다른 표기   金弘壹  
  출생지   평안북도  
  사망일   1980년 8월 8일  
  소속   前 외무부 장관 (제7대)  
    일서  
  관련사항
 
김홍일(金弘壹, 1898년 9월 23일-1980년 8월 8일)은 일제 강점기 중화민국의 군인이었으며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출신 군인, 정치인이다. 다른 이름은 왕웅(王雄).

호 일서(逸曙). 초명 홍일(弘日). 별명 최세평(崔世平). 중국명 왕웅(王雄)·왕일서(王逸曙)·왕부고(王復高). 평북 용천(龍川) 출생. 진건(振健)의 3남.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하던 부친의 부름을 받아 1913년 만주로 건너가 선양[瀋陽]에서 중국계 소학교에 입학하여 공부하다가, 다시 귀국하여 정주(定州)의 오산학교를 졸업하고 황해도의 경신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1918년 오산동문회가 항일단체라 하여 1주일간 고문을 당하고 석방되자, 곧 중국 상하이[上海]로 망명하였다. 장제스가 이끄는 중국군에 투신하여 사단장, 군단 및 군사령부 참모장을 역임하고, 중국군 2성 장군이 되었다. 1932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김구의 요청으로 폭탄을 제작하여 이봉창 의사와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지원하였다.

1945년 6월 임시정부의 요청으로 광복군 총사령부 참모장이 되었으며, 해방 이후에는 중국에 거주하던 동포들을 보호하고 안전하게 귀국할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1948년 육군사관학교 교장을 역임했으며, 한국전쟁 때는 시흥지구 전투사령관으로 북한군의 한강 도하를 5일간 저지하여 미국의 지상군 참전을 위한 시간획득에 기여하였다. 초기작전시 후퇴하는 상황에서 1군단을 창설하여 수도사단 1, 2사단을 효과적으로 지휘하여 진천-음성-청주 축선에서 미군과 협조된 지연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낙동강선 방어시 기계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등 1군단장으로서 반격작전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1951년부터 1961년까지 주 중화민국 대사를 역임하고, 1960년 무렵 모종의 정변계획을 세우고 강원룡에게 도움을 요청하였으나 응답을 받지 못하였다. 그뒤 5.16 군사정변 이후 잠시 1961년 5월 21일 - 1961년 7월 21일 제7대 외무부장관을 맡았다.

1965년 박정희 정권의 한일협정 체결에 반대하면서 정계에 투신하여 1967년 제7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한국독립당을 재건하였으며 1971년에는 신민당 당수가 되었으나 당내 내분을 겪은 뒤 1972년 당수직을 사임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을 수여받았고, 을지,태극무공훈장 등도 수훈한 바 있다. 중화민국 정부로부터도 충근(忠勤)·대수운마(大綬雲摩)·대수경성(大綬景星) 등의 훈장을 받았다.
 

  수상경력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
태극무공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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